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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백리-맹사성
  • 작성자
    (감사실)
    작성일
    2014년 6월 12일(목) 11:24:41
  • 조회수
    4291

 

 

맹사성(孟思誠, 1360~1438)

 

맹사성(孟思誠.1360년(공민왕9년)~1438년(세종20년))은 고려말~조선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충청남도 아산의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이다. 고려 수문전제학 희도(希道)의 아들이며 명장인 최영(崔瑩)의 손녀 사위다. 온양 출신으로 1386년(우왕12)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춘추관검열이 된 데 이어 세종13년에 좌의정이 되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청백한 선비로도 유명한 일화를 많이 남겼다. 황희와 함께 조선 초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시문에 능하고 음률에도 밝아 향악을 정리하기도 했다. 또한 맹사성은 검소한 관리, 효자로 표창받아 정문이 세워졌으며 직접 쓴 작품에 유명한 강호사시가가 있다 .

 

- 1435년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으나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자문하였다 한다.

 

- 맹사성의 사람됨이 소탈하고 엄하지 않아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을 갖추고 대문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살림살이를 일삼지 않고 식량은 늘 녹미(祿米:조정에서 봉급으로 주는 쌀)로 하였고, 바깥 출입을 할 때에는 소타기를 좋아해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혜로우면서도 청렴 결백한 맹사성의 성품은 요즘 사람들에게 더욱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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