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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구


지명유래

서곶의 지명유래

검단지역이 편입되기 전, 인천의 검단구 전역은 지난날 서곶으로 불리던 곳이 었다. 1914년 4월 1일 부평군 모월곶면과 석곶면을 통합해 서곶면이라 하였다. 지명은 군소재지인 부평에서 서쪽 해안에 길게 뻗어있으므로 그렇게 지어졌다. 이 지명이 반세기 이상 사용되었으므로 인천시가 구제를 변경하여 서곶출장소를 폐지하고 북구에서 검단구를 분리할 때, 서곶구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서곶은‘서쪽으로 길게 뻗은 해안’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다. 동아출판사가 발행한 국어사전에 의하면 우리말의 ‘곶’ 또는 ‘고지’는 바다나 호수로 길게 뻗은 육지의 끝부분을 가리킨다.

검단구 지도 : 블로대곡동 표기

불로동 (不老洞)

조선조 말에는 마산면(馬山面)에 속한 마을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동네 앞산인 만수산(萬壽山)에 산삼을 비롯한 각종 약초가 많아 어느 노인이 이 산에 올라 부지중에 산삼과 약초를 채취하여 나물로 먹은 후부터는 장수하였다 하며, 그후부터 만수산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로초를 캐러 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마을을 ‘불로(不老)’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갈매리와 목지리를 병합하여 불로리라 해서 검단면에 편입되었다.

검단구 지도 : 블로대곡동 표기

대곡동 (大谷洞)

큰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한골, 황골, 황곡 또는 ‘대곡(大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사자족애(獅子足艾, 약쑥)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고려시대에 중국과 무역을 하는데 그 당시는 물물교환이 보통이었다. 중국에서는 한약재와 도자기, 고려에서는 화문석과 인삼을 주요 품목으로 교환하였다. 특히 강화와 김포에서는 고려 최고의 품질로 약효과 뛰어난 약쑥(艾)이 서해안 일대에서 생산되었는데 특히 서곶(西串) 일대의 것이 좋았다 한다. 지금도 ‘쑥당이’ 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경서동(景西洞)의 옛 이름이다. 쑥은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약 1개월간 경기도에서 나오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약종 상인들이 계양의 황해장(黃海場)터에서 수납하고 다시 국제간의 거래는 발아시장(發阿市場, 현 검안동소재)에서 이루어져있다. 그때 주막집이 많은 옛 상두산을 歌絃山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역상인들의 유숙은 여인숙이 많은 큰 골짜기 동네에서 하였다고 전하는데 그 곳이 바로 ‘대곡’이었다고 전한다. 현재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서해일대(서곶과 안동포)의 것을 제일 가는 약애(藥艾, 약쑥)로 친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두곡리를 병합하여 대곡리라 해서 검단면에 편입됨.

검단구 지도 : 검단동 표기

검단동 (黔丹洞)

고려때는 김포현, 조선조 태종14년(1414)8월에는 개칭된 금양현에 동년 10월에는 다시 김포현에 속했다가 인조 10년(1632) 금릉군으로 개칭될 때 금릉군에, 조선조말 김포현에서 김포군으로 개칭된 뒤부터 현재까지 김포군에 속해있다가 행정구역 통·폐합전, 검단면에 3개면으로 분구되었으나, 1914년 노장면(원당,당하), 마산면(마전,불로,대곡), 검단면(금릉,오류,왕길)등 3개면을 합병하여 검단면으로 칭하게 되었다. 黔자는 “검다”의 뜻. 단(丹)자는 “붉다”는 뜻으로 본면의 서해안 일대가 개펄로 되어 있어 “검다”의 의미로 “黔”자를 “검단”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하여 지며, 95년 3월 1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광역시 검단구로 통합되면서 검단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현재 행정구역상 마전동, 당하동,원당동,불로동,대곡동,금곡동,오류동,왕길동의 8개의 법정동으로 이뤄졌다.

검단구 지도 : 오류왕길동 표기

오류동 (梧柳洞)

조선조 중엽 이전,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숲이 많았으며, 그 옆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이들 나무 이름을 따서 ‘오류리’라 칭하였다고 전하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반월촌, 봉화촌, 대촌을 병합하여 오류리라고 했다.

검단구 지도 : 오류왕길동 표기

왕길동 (旺吉洞)

조선조 중엽에 어느 풍류객이 이 마을을 '旺 吉'이라고 작명하여야 이 마을에 덕(德)이 있고 생활이 풍요로울 것이라고 하여 '왕길' 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왕길또는 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소왕길리, 안동포, 동사곶리를 병합하여 왕길리라 칭했다.

검단구 지도 : 마전동 표기

마전동 (麻田洞)

조선조 말까지 마산면(馬山面)이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삼을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마전(麻田)’으로 불렸다고 전한다. 검단동의 소재지로 각종 행정기관 및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다.

검단구 지도 : 당하동 표기

당하동 (堂下洞)

옛날에 제림산에 당(堂)이 있었고 당 아래 부락이 위치하였다 하여 ‘당하(堂下)’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검단구 지도 : 원당동 표기

원당동 (元堂洞)

조선초 초기에 이 마을에 원당(元堂)이라는 당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을 ‘원당’이라 명하였다고 한다. 한편 일설에는 옛 북성산 밑이라 산림이 울창하여 수목이 풍부하였으므로 이 곳에서 생산되는 좋은 목재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원당’이라고 하였다는 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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